왜 이 특집인가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2026년 6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87만 4,278명입니다. 1년 전보다 약 14만 명(5.2%) 늘었고, 국적별로는 중국·베트남·미국·태국·우즈베키스탄 순이며 네팔 출신도 처음 1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 가운데 91일 이상 머물려고 외국인등록을 마친 사람이 163만 명이 넘습니다.
일하러 온 사람이 많습니다. 정부가 인력이 부족한 업종에 외국인 노동자를 연결해 주는 고용허가제(비전문취업, E-9 체류자격)로 일하는 사람은 고용노동부 자료로 2026년 7월 기준 약 28만 7천 명이고, 그중 80%가 제조업에서 일합니다. 농어촌의 계절근로자(E-8), 재외동포의 방문취업(H-2)까지 더하면 우리 밥상과 공장, 건설 현장 곳곳에 이주 노동자의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라고 할 때, 그 주인은 누구일까요. 헌법 조문은 대부분 “모든 국민은”으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국민이 아닌 사람은 기본권이 없는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이번 특집입니다.
헌법은 외국인을 어떻게 보나요
헌법 제6조 제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정합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여러 결정을 통해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기본권에는 ‘인간의 권리’와 ‘국민의 권리’가 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인간의 권리는 외국인도 주체가 되지만,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 자격과 결부된 국민의 권리는 원칙적으로 국민에게만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 1994년 12월 29일, 93헌마120 — 헌법재판소는 “국민 또는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이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처음으로 명시한 결정으로 꼽힙니다.
- 2001년 11월 29일, 99헌마494 — 재외동포법 사건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은 대체로 인간의 권리로서 외국인도 주체가 되고, 평등권도 인간의 권리로서 참정권 등 성질상의 제한과 상호주의에 따른 제한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정부 수립 전에 이주한 동포를 법 적용에서 뺀 것이 평등권 침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 2007년 8월 30일, 2004헌마670 — 산업연수생 사건입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에게 근로기준법의 핵심 보호를 적용하지 않은 노동부 지침이 평등권 침해로 위헌이 되었습니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근로의 권리를 둘로 나누어, 일자리를 달라고 국가에 요구하는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는 국민의 권리지만, 건강한 작업환경·정당한 보수·합리적 근로조건을 요구하는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자유권의 성격이 있어 외국인도 주체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 2011년 9월 29일, 2007헌마1083 등 —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3회로 제한한 외국인고용법 조항이 문제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외국인에게도 직장선택의 자유의 주체성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면서도, 3회 제한 자체는 그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아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2021년 12월 23일의 2020헌마395 결정에서도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제한한 법률과 고시에 대해 같은 결론이 유지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국적이 없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니므로, 사람이기에 갖는 권리는 외국인도 갖습니다. 다만 어떤 권리가 ‘인간의 권리’이고 어떤 권리가 ‘국민의 권리’인지, 그리고 인정된 권리를 얼마나 제한할 수 있는지는 사안마다 다시 따집니다.
외국인도 똑같이 갖는 권리
-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제10조) — 가장 기본이 되는 인간의 권리입니다. 폭언·폭행, 여권 압류, 비인간적인 숙소 같은 문제는 국적과 상관없이 이 조항이 금지하는 일입니다.
- 평등권(제11조) — 합리적 이유 없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입니다. 산업연수생 결정이 바로 이 조항으로 내려졌습니다.
- 신체의 자유(제12조) — 체포·구속·수색은 외국인에게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합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보호(구금)도 이 원칙 아래 있습니다.
-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제32조) —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합니다. 앞서 본 대로 이 부분은 외국인도 주체입니다.
- 노동3권(제33조) — 대법원은 2015년 6월 25일 전원합의체 판결(2007두4995)에서, 취업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라도 실제로 일하고 임금을 받는다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이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설립신고서를 낸 지 10년 만에 나온 결론이었습니다.
- 보건에 관한 권리(제36조 제3항) — 국가는 모든 사람의 건강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감염병 예방과 응급의료는 체류자격을 묻지 않는 대표적 영역입니다.
국민에게만 있거나 제한되는 권리
- 참정권(제24조 선거권, 제25조 공무담임권) —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는 국민만 투표합니다. 다만 공직선거법 제15조에 따라 영주 체류자격을 얻은 지 3년이 지나고 그 지역 외국인등록대장에 오른 외국인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 선거에 투표할 수 있습니다. 2005년 개정으로 도입된 제도로, 아시아에서는 드문 예입니다.
-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제34조) — 사회보장기본법 제8조는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할 때 상호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개별 법령에 따르도록 합니다. 그래서 산재보험처럼 전면 적용되는 것, 건강보험·국민연금처럼 체류자격과 상대국 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기초생활보장처럼 원칙적으로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이 섞여 있습니다.
- 입국과 체류의 자유 — 외국인이 어느 나라에 들어가 머무를지는 그 나라가 정한다는 것이 국제법의 오랜 원칙입니다. 체류자격과 기간, 사업장 변경 같은 제한은 이 원칙에서 나옵니다. 다만 일단 입국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절차는 앞서 본 신체의 자유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일터에서 실제로 적용되는 법
이 부분은 이주 노동자 본인이 꼭 알아 두어야 할 내용입니다. 핵심은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근로기준법 — 근로계약서 작성, 임금 지급, 근로시간과 휴일, 해고 제한 등 기본 규칙이 국적과 상관없이 적용됩니다.
- 최저임금법 — 2026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0,320원이며 모든 사업장, 모든 노동자에게 같은 금액입니다. 외국인이라고 더 적게 줄 수 없습니다.
- 산업안전보건법 — 안전교육, 보호구, 위험한 작업의 안전조치는 사용자의 의무입니다.
- 산업재해보상보험법 — 대법원은 1995년 9월 15일 판결(94누12067)에서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출입국관리법은 취업자격 없는 고용이라는 행위를 금지할 뿐, 이미 제공한 노동에 따르는 권리까지 없애는 법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산재 신청이 가능한 근거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제한이 있습니다. 고용허가제(E-9)로 온 노동자는 외국인고용법 제25조에 따라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수 없습니다. 사용자가 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한 경우, 휴업·폐업, 임금체불이나 폭행 같은 부당한 처우 등 법과 고시가 정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첫 취업활동 기간에는 원칙적으로 3회, 재고용으로 연장된 기간에는 2회까지만 변경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용자 쪽의 사정(휴업·폐업·부당한 처우 등)으로 옮긴 경우는 횟수에 넣지 않습니다. 이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다음 절에서 다룹니다.
두 입장을 그대로 봅니다
이 특집은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원칙에 따라, 논쟁이 있는 부분은 양쪽 논거를 같은 비중으로 소개합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읽는 분이 판단하시면 됩니다.
쟁점: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더 자유롭게 해야 할까요
더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입장
-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상태는 사용자와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임금체불이나 폭언이 있어도 “신고하면 사업장을 못 옮기게 하겠다”는 말 한마디에 참게 되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제도의 개선을 여러 차례 권고해 왔습니다.
- 한국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협약을 2021년에 비준해 2022년 4월부터 효력이 생겼습니다. 스스로 그만둘 자유가 없는 노동은 이 협약의 정신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 헌법재판소가 외국인에게도 직장선택의 자유의 주체성을 인정한 이상, 사유와 횟수를 촘촘히 제한하는 것은 그 자유의 핵심을 비워 버린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2020헌마395 결정에도 반대의견이 있었고 학계의 비판 논문도 이어졌습니다.
현행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
- 고용허가제는 특정 사업장의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국가가 허가한 제도입니다. 자유롭게 옮길 수 있게 되면 노동자들이 조건이 나은 도시와 대기업으로 몰려, 정작 인력이 필요한 농어촌과 소규모 제조업이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는 우려입니다.
- 사용자는 노동자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 신청·교육·기숙사 마련 등 비용과 시간을 들입니다. 입국 직후 이직이 자유로우면 이 부담을 감당할 사업주가 줄고, 결국 제도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헌법재판소는 2011년과 2021년 두 차례 모두 이 제한이 내국인 고용기회 보호와 인력 수급이라는 목적에 비추어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부당한 처우가 있으면 횟수에 관계없이 옮길 수 있는 예외가 이미 있으므로, 제한을 없애기보다 예외 사유를 잘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견해입니다.
함께 생각할 또 하나의 쟁점: 미등록 이주민
2026년 6월 말 기준 체류기간을 넘겨 머무는 미등록 외국인은 약 34만 6천 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12%입니다. 한쪽에서는 법을 지키며 절차를 밟은 사람과의 형평, 국경 관리라는 국가의 기본 책무를 들어 단속과 출국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다른 쪽에서는 체류자격이 없어도 사람이며 노동자라는 점, 단속을 두려워해 임금체불·산재·범죄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는 현실을 들어 최소한 권리 구제 절차에서는 체류자격을 묻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앞서 본 대법원 판결들은 이 두 입장 사이에서 “체류자격은 출입국관리의 문제이고, 이미 이루어진 노동의 권리는 별개”라는 선을 그은 것입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아래는 공식 페이지로 확인한 창구입니다. 한국어가 서툴러도 됩니다.
- 1345 외국인종합안내센터(법무부) — 20개 언어, 평일 09:00~22:00(18:00 이후에는 한국어·영어·중국어). 통화료는 발신자 부담입니다. 2026년 5월 27일부터 임금체불·폭행·성폭력 등 인권침해 신고 전용 1번이 생겨, 신고 접수부터 관계기관 연계까지 한 번에 도와줍니다. 해외에서는 +82-2-1345.
- 1350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 임금, 근로시간, 해고 등 노동 상담. ARS에서 외국어 상담 연결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1577-0071 외국인력상담센터(한국산업인력공단) — 고용허가제 노동자와 사업주를 위한 18개 언어 상담, 09:00~18:00. 사업장 변경, 고충 처리, 생활 정보를 다룹니다.
- 1331 국가인권위원회 — 차별과 인권침해 상담, 평일 09:00~18:00. 이주인권이 전문 상담 분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금을 못 받았다면 고용노동부 노동포털에서 온라인으로 ‘임금체불 진정’을 내거나, 일한 사업장이 있는 지역의 지방고용노동관서를 직접 찾아가 진정할 수 있습니다.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출퇴근 기록, 사용자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모아 두면 큰 도움이 됩니다.
생각해 볼 질문
- 헌법 조문이 “모든 국민은”으로 시작하는데도 외국인에게 기본권이 인정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권리’와 ‘국민의 권리’를 나누는 기준을 내 말로 설명해 볼까요?
- 사업장 변경 제한 논쟁에서 두 입장이 각각 지키려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두 가치를 모두 살리는 제3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 체류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과 출입국관리법을 적용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두 법이 부딪히는 지점을 찾아봅시다.
- 내가 다른 나라에 일하러 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나라 헌법이 나에게 꼭 보장해 주었으면 하는 권리는 무엇인가요?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제11조 평등권 — 외국인 차별 문제의 출발점
- 제32조 근로의 권리·제33조 노동3권 — 일터의 권리
- 주제 특집: 인권 — 국적을 넘어서는 권리의 뿌리
- 주제 특집: 보이텔스바흐 합의 — 논쟁을 다루는 이 사이트의 원칙
미확인·남은 검토 사항
- 고용허가제 체류 인원 약 28만 7천 명(2026년 7월)은 고용노동부 자료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 따른 것입니다. 법무부 통계의 E-9 체류자격 인원과는 집계 기준이 달라 수치가 다를 수 있으므로, 통계월보 원본 표로 다시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 1350 고객상담센터의 외국어 상담이 몇 개 언어로, 어느 시간대에 제공되는지는 공식 페이지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정한 고용노동부 고시는 수시로 개정됩니다. 최신 고시 내용은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나 1577-0071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