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무임승차와 세대 형평

40년 된 지하철 무임승차 — 노인 빈곤 시대의 최소한의 복지일까요, 미래 세대에 미루는 청구서일까요?

무슨 이야기일까요

지하철 개찰구에서 ‘우대용’ 카드를 대고 지나가는 어르신의 모습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65세 이상 노인의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1980년 70세 이상 요금 50% 할인으로 시작해,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이 경로우대 연령을 65세로 정하고, 1984년부터 65세 이상 전액 면제로 확대되면서 자리 잡았습니다. 올해로 40년을 넘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편적 노인복지 제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익숙한 제도가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이고, 무임승차 대상자는 해마다 늘어납니다. 전국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의 무임수송 손실은 2020년 약 4,456억 원에서 2025년 약 7,754억 원으로 5년 만에 1.7배가 되었습니다. 한쪽은 “노인 빈곤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이것마저 줄이자는 것이냐”고 말하고, 다른 쪽은 “그 비용을 결국 미래 세대가 갚게 된다”고 말합니다. 복지와 형평이 정면으로 만나는 자리, 여기에 헌법의 질문이 있습니다.

헌법은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제34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같은 조 제4항은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고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노인 복지는 국가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심이 아니라, 헌법이 명시한 국가의 의무라는 뜻입니다.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평등권은 이 논쟁에서 양쪽 모두의 무기가 됩니다. 지하철이 없는 지역의 노인은 같은 65세여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코레일이 운영하는 구간의 무임 손실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국비로 보전되지만 지자체 산하 도시철도는 그런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누구와 누구를 같게 대접해야 하는가’라는 평등의 질문이 여러 겹으로 쌓여 있는 셈입니다.

다만 헌법은 노인 복지를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할지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현행 노인복지법 제26조도 65세 이상에게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으로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정한 재량 규정입니다. 그래서 이 논쟁은 위헌이냐 합헌이냐의 문제라기보다, 헌법이 국회와 정부에 맡겨 둔 설계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무엇이 부딪히나요

  • 노인의 인간다운 생활(제34조) vs 재정 부담의 세대 전가 — 2023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약 40%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습니다. 그러나 무임수송 손실은 운영기관의 부채로 쌓이고, 그 부담은 요금 인상이나 세금으로 지금의 청년과 미래 세대에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 지역 간 평등(제11조) — 무임승차는 도시철도가 있는 대도시 노인만 누립니다. 농어촌 노인에게는 같은 제도가 없어, ‘보편 복지’가 사실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국가와 지자체 사이의 비용 분담 — 무임승차는 국가 법령(노인복지법)에서 비롯됐는데 손실은 지자체와 운영기관이 떠안습니다. 코레일만 국비 보전을 받는 구조가 공평한지를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오래 다투고 있습니다.

두 입장을 그대로 봅니다

“유지하거나 넓혀야 한다”는 입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한국 노인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입니다. 연금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세대에게 무임승차는 몇 안 되는 실질적 복지이고, 이것을 줄이는 것은 가장 가난한 노인부터 때리는 일이 됩니다.
  • 이동은 곧 건강이고 사회참여입니다. 무임승차 덕분에 노인들이 밖으로 나와 걷고, 사람을 만나고, 일자리와 복지시설에 접근합니다. 우울증·고립을 줄여 의료비와 돌봄 비용을 아끼는 효과까지 계산하면, 무임승차는 손실이 아니라 사회적 투자라는 것입니다.
  • 어차피 운행하는 지하철에 노인이 타는 것이므로 추가 비용은 크지 않습니다. ‘손실액’은 무임 승객이 모두 요금을 냈을 경우를 가정한 회계상 숫자이지, 그만큼 현금이 새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입니다.

“이제는 고쳐야 한다”는 입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1984년의 65세와 지금의 65세는 다릅니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난 초고령사회에서 연령 기준을 그대로 두면 무임 대상자와 손실은 계속 불어나고, 그 청구서는 지금 요금을 내는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돌아갑니다.
  • 지하철이 있는 대도시 노인만 혜택을 받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구시는 2023년 조례를 고쳐 도시철도 무임 연령을 단계적으로 70세까지 올리는 대신 시내버스 무료 이용을 새로 도입해, ‘어디 사느냐’에 따른 격차를 줄이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 부유한 노인에게도, 가난한 노인에게도 똑같이 무료인 제도가 최선일까요? 연령이 아니라 소득을 기준으로 하거나, 일정 금액의 교통바우처로 바꾸면 같은 예산으로 더 어려운 사람을 더 두껍게 도울 수 있다는 제안입니다.

두 입장 모두 노인의 이동권 자체를 없애자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투는 것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누구의 돈으로’라는 설계입니다. 어느 쪽 논리에 더 무게를 둘지는 여러분 각자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흔한 오해 바로잡기

오해: “지하철 적자는 노인 무임승차 때문이다.”

사실: 무임수송 손실은 적자의 큰 요인 중 하나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요금이 운송 원가에 크게 못 미치는 구조, 환승 할인 등 다른 요인도 함께 작용합니다. 또 ‘손실액’의 계산 방식(무임 승객이 전부 요금을 냈다고 가정)을 두고도 논쟁이 있습니다. 숫자 하나로 책임을 한쪽에 몰아붙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오해: “이 논쟁은 노인 대 청년의 싸움이다.”

사실: 세대 갈등처럼 보도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쟁점의 상당 부분은 국가와 지자체, 코레일과 도시철도 사이의 비용 분담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청년도 언젠가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됩니다. ‘노인 편이냐 청년 편이냐’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설계가 무엇이냐’로 질문을 바꾸면 논쟁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오해: “법이 무임승차를 못 박아 두어서 바꿀 수 없다.”

사실: 노인복지법 제26조는 무료 또는 할인 이용을 하게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과 지자체의 결정에 맡겨져 있습니다. 대구시의 연령 조정 사례처럼 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바꿀 수 있다는 것과 바꾸는 것이 옳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그 판단이 바로 이 논쟁의 핵심입니다.

생각해 볼 질문

  • 무임승차의 기준으로 ‘연령’과 ‘소득’ 중 무엇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나요? 소득 기준으로 바꾸면 얻는 것과 잃는 것(예: 심사 비용, 낙인감)은 무엇일까요?
  • 무임승차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 것이 맞을까요 — 국가 세금, 지자체 예산, 요금을 내는 승객, 아니면 혜택을 받는 노인 일부? 각 선택은 어떤 세대·지역에 부담을 옮기게 되나요?
  • 이동이 건강과 사회참여로 이어진다면, 무임승차의 ‘편익’도 손실액처럼 숫자로 계산해서 함께 놓고 판단해야 할까요? 계산하기 어려운 가치는 논쟁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 여러분이 65세가 되는 해를 상상해 봅시다. 그때의 나는 이 제도가 어떤 모습이기를 바랄까요?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의 답이 다르다면, 그 차이는 무엇을 말해 줄까요?

🔗 관련 기본권

제34조 ·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11조 · 평등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