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과 시위

지하철 시위는 시민을 볼모로 잡는 걸까요, 20년 넘게 미뤄진 약속을 알리는 걸까요? 이동할 권리와 시위할 권리를 함께 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던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 고장으로 추락해 한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라는 현실이 드러난 이 사고는, 장애인들이 ‘이동할 권리’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게 된 기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법이 만들어지고 저상버스가 도입되었지만, 20여 년이 지나도 약속된 변화는 더디게 왔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채 열차에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열차는 지연되었고, 출근길 시민들의 발이 묶였습니다. 누군가는 “아무리 목적이 옳아도 무고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방식은 잘못”이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수십 년을 조용히 요구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73차례 이어진 이 시위는 2026년 8월, 서울시의회 다수당이 이동권 보장 조례 처리를 약속하면서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논쟁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한 사람의 이동할 권리와 다른 사람의 이동할 권리가 부딪힐 때, 헌법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헌법은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자유는 모든 국민의 것입니다. 계단과 리프트뿐인 역사(驛舍)는 이 자유를 휠체어 이용자에게만 닫아 놓은 셈이 됩니다.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 같은 요금을 내고도 누구는 타고 누구는 못 타는 대중교통이라면, 평등권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제34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신체장애자 등을 보호할 의무를 집니다. 학교에 가고, 일터에 가고, 병원에 가는 일은 모두 ‘이동’에서 시작됩니다.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 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른 사람의 권리와 부딪힐 때 어디까지 보호되는지는 계속되는 헌법 논쟁입니다.

국회도 움직였습니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되어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차량)의 근거가 마련되었고, 이 법은 장애인·고령자·임산부·영유아 동반자·어린이를 ‘교통약자’로 정의했습니다. 2007년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법원을 통한 구제 절차를 두었습니다. 문제는 법의 존재가 아니라 이행의 속도였습니다. 정부 통계로 전국 시내버스 저상버스 보급률은 2024년 말 기준 44.4%에 머물렀고, 지역 간 격차도 큽니다.

무엇이 부딪히나요

  • 집회의 자유(제21조) vs 다른 시민의 이동의 자유(제14조) —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표현이자 호소이지만, 동시에 출근길 시민 수만 명의 발을 묶습니다. 두 권리 모두 헌법의 권리라는 점이 이 논쟁을 어렵게 만듭니다.
  • 평등권(제11조)의 이행 vs 예산과 우선순위 — 저상버스·엘리베이터·특별교통수단에는 큰 예산이 듭니다. 한정된 재정에서 무엇을 먼저 할지는 결국 정치가 정하고, 그 결정이 늦어지는 동안 불평등은 지속됩니다.
  • 절차의 준수 vs 절차가 배제해 온 목소리 — “합법적 절차 안에서 요구하라”는 말과, “그 절차 안의 요구는 20년간 들리지 않았다”는 말이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두 입장을 그대로 봅니다

“목적이 정당해도 수단은 한계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출근길 시민에게도 제14조의 이동의 자유와 생계가 있습니다. 시위로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정책 결정권자가 아니라, 그날 지각하면 곤란해지는 평범한 노동자·학생입니다. 항의의 상대와 피해의 대상이 어긋나 있다는 것입니다.
  • 집회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무제한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직접 제약하는 방식까지 보호된다면, 어떤 주장이든 ‘절박하다’는 이유로 타인의 일상을 멈춰 세울 수 있게 됩니다.
  • 시위 방식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이동권이라는 대의에 대한 지지를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설득해야 할 시민을 적으로 돌리는 방식은 목적 달성에도 불리하다는 지적입니다.

“문제의 뿌리는 시위가 아니라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라는 입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오이도역 사고로부터 20년, 이동편의증진법 제정으로부터도 어느새 20년입니다. 그동안 조용한 집회, 성명서, 국회 앞 농성은 수없이 있었지만 예산과 이행은 계속 뒤로 밀렸습니다. 불편을 만들지 않는 시위는 뉴스가 되지 않았고, 뉴스가 되지 않는 요구는 예산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출근길 시민이 겪는 30분의 지연은 분명한 불편이지만, 장애인에게는 그 ‘지연’이 평생이었다고 말합니다. 애초에 탈 수 없는 버스, 오지 않는 특별교통수단 앞에서 매일의 출근·통학 자체가 막혀 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역사적으로 참정권 운동이든 노동권 운동이든, 권리의 확장은 다수가 불편해한 순간을 거쳐 왔습니다. 시위의 방식을 비난하는 데 쓰는 에너지의 일부라도 ‘왜 이들이 여기까지 왔는가’에 쓰자는 호소입니다.

두 입장은 각각 헌법의 다른 조항 위에 서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 정답을 내리는 대신, 두 권리를 모두 살리는 길 — 약속의 이행을 앞당겨 시위의 이유 자체를 줄이는 길 — 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헌법의 태도에 가까울 것입니다.

흔한 오해 바로잡기

오해: “장애인 이동권은 소수만의 문제다.”

사실: 법이 정의하는 ‘교통약자’에는 장애인만이 아니라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가 포함됩니다. 정부 조사에서 교통약자는 전체 인구의 약 30%에 이릅니다. 저상버스와 엘리베이터는 유모차를 미는 부모와 무릎이 아픈 어르신도 함께 이용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나이가 들고, 누구나 다칠 수 있습니다.

오해: “법이 이미 있으니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사실: 2005년 법 제정 이후에도 이행은 더뎠습니다. 2023년부터 시내버스를 새로 바꿀 때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되었지만, 전국 보급률은 2024년 말 기준 44.4%였고 지역에 따라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법의 존재와 권리의 실현 사이에는 예산·집행·감시라는 긴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오해: “시위에 반대하면 장애인의 권리에 반대하는 것이다(또는 그 반대).”

사실: 시위의 ‘방식’에 대한 평가와 이동권이라는 ‘권리’에 대한 지지는 별개의 판단입니다. 시위 방식을 비판하면서 이동권 예산 확대를 지지할 수도 있고, 시위에 공감하면서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두 판단을 하나로 묶어 상대를 낙인찍는 순간, 토론은 멈춥니다.

생각해 볼 질문

  • 여러분이 출근길 시위로 30분 늦어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을 놓쳤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20년째 같은 요구를 해 온 당사자라면 — 각각의 자리에서 이 시위를 어떻게 보게 될까요?
  • ‘불편을 주지 않는 시위’는 가능할까요? 만약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 시위가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면, 시위의 자유는 무엇을 보장하는 것일까요?
  • 저상버스 확대, 지하철 엘리베이터, 특별교통수단 증차에는 모두 세금이 듭니다. 한정된 예산에서 이동권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준을 제시하겠나요?
  • 학교나 동네에서 계단, 좁은 문, 높은 턱 때문에 누군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을 찾아봅시다. 그 공간을 바꾸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 비용인가요, 관심인가요?

🔗 관련 기본권

제11조 · 평등권제14조 · 거주·이전의 자유제21조 ·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제34조 ·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