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발전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지속가능발전교육(ESD, 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과 역량과 가치를 기르는 교육입니다. 기후, 에너지, 빈곤, 소비 같은 문제를 하나의 과목으로 떼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그 문제들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시험을 위해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쓰는 관점을 기르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SD는 환경교육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1권에서 본 지속가능성의 세 기둥 — 환경·경제·사회 — 을 모두 다루기 때문에, 생태계와 기후만이 아니라 빈곤, 불평등, 소비와 생산, 평화로운 제도까지 배움의 주제로 삼습니다. SDGs의 세부목표 4.7이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을 나란히 든 것도, 지구의 문제와 사람의 문제가 결국 한 문제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 흐름을 이끌어 온 것은 유네스코입니다. 유엔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를 유엔 지속가능발전교육 10년(UN DESD)으로 정해 세계 각국이 ESD를 교육 정책에 심도록 했고, 그 후속으로 국제실천프로그램(GAP, 20152019)을 거쳐, 지금은 ESD for 2030(20202030) 프로그램이 SDGs 17개 목표 전체의 달성을 교육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SDGs의 4번 목표(양질의 교육)이면서, 동시에 나머지 16개 목표를 이루는 열쇠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입니다.
기본 원칙은 무엇인가요
ESD는 흔히 세 개의 축으로 설명됩니다.
첫째, 지식 — 문제가 서로 얽혀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후는 에너지와, 에너지는 산업·일자리와, 일자리는 빈곤·불평등과 이어져 있습니다. 한 조각만 아는 지식으로는 어느 문제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ESD는 과목의 담장을 넘어 연결을 가르칩니다.
둘째, 역량 —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입니다. 전체를 잇는 시스템 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협력, 이해가 부딪힐 때의 갈등 조정, 그리고 결정에 실제로 참여하는 능력이 여기에 듭니다. 독일의 지속가능발전교육(BNE)에서는 이를 형성역량(Gestaltungskompetenz)이라고 부릅니다. 교육학자 게르하르트 데 한이 다듬은 이 개념은, 미래를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실제로 빚어내는 능력을 뜻합니다.
형성역량은 열두 가지 부분역량으로 구체화되어 있는데, 몇 가지만 옮겨 보면 교실에서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지가 또렷해집니다.
- 앞을 내다보며 생각하기 — 오늘의 선택이 내일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려 보는 힘
- 여러 학문의 눈으로 보기 — 한 과목의 담장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연결을 찾는 힘
- 다른 사람과 함께 계획하고 행동하기 — 혼자의 실천을 넘어 공동의 해법을 만드는 힘
- 자신과 타인이 따르는 가치를 성찰하기 — 내 소비와 생활의 밑그림을 스스로 검토하는 힘
셋째, 가치 — 판단의 저울입니다. 오늘의 우리와 미래 세대 사이의 세대 간 형평, 잘사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의 공정, 부담을 약한 쪽에 떠넘기지 않는 정의 같은 기준이 없으면, 지식과 역량은 방향을 잃습니다.
지속가능성과 교육은 어떤 관계인가요
“규제와 기술로 해결하면 되지, 왜 교육까지 필요하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답은 전환의 시간표에 있습니다. 탄소중립 같은 과제는 한 번의 법 개정이나 발명으로 끝나지 않고 수십 년에 걸친 방향 전환을 요구합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정권은 바뀌고 유행은 지나갑니다. 전환이 끝까지 가려면, 왜 이 길을 가는지 이해하고 동의하는 시민이 세대를 이어 존재해야 합니다.
가까운 예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분리배출 제도를 만들어도, 왜 그렇게 나눠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수거함이 그저 복잡한 쓰레기통이 됩니다. 반대로 원리를 이해한 시민은 제도가 허술한 곳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고, 나아가 더 나은 제도를 요구합니다. 규제는 사람의 바깥에서 작동하지만, 배움은 사람의 안쪽에서 작동합니다.
개관 편에서 보았듯이 시민의 동의 없이 밀어붙인 전환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교육은 바로 그 동의가 자라나는 자리입니다. 규제는 행동을 바꾸고 기술은 수단을 바꾸지만, 교육은 판단하는 사람을 기릅니다. 그래서 ESD는 환경 정책의 곁가지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라는 건물의 기초 공사에 해당합니다.
정치교육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ESD와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은 형제 같은 사이입니다. 둘 다 정답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판단력을 기르는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정치교육의 기준인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세 원칙 — 교화 금지, 논쟁성 재현, 학습자 지향 — 은 ESD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기서 선을 하나 긋는 것이 중요합니다. 측정된 과학적 사실 — 온실가스 농도, 기온 상승 폭 — 은 논쟁거리가 아니므로 사실대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사실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 어떤 에너지를 얼마나 빨리, 누구의 부담으로 바꿀 것인가 — 는 사회에서 실제로 논쟁 중인 문제이므로, 교실에서도 여러 입장을 논쟁적인 그대로 다루어야 합니다. 사실을 상대화해서도 안 되고, 열려 있는 선택지를 정답 하나로 닫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이트의 쟁점 페이지들이 어느 편의 손도 들지 않고 입장들을 나란히 보여주는 것과 같은 원칙입니다.
그렇다고 교사가 침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보이텔스바흐 편에서 본 것처럼, 학교는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가치에 대해서는 중립일 수 없습니다. ESD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 세대의 삶의 조건도 소중하다”는 가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출발점이고, 그 가치를 어떤 길로 실현할지가 논쟁의 자리입니다. 가치의 방향은 분명히 하되, 길의 선택은 배우는 사람에게 열어 두는 것 — 이것이 두 교육이 공유하는 균형 감각입니다.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이루어지나요
ESD는 학교만의 일이 아닙니다. 유엔이 10년 계획의 이름에 ‘학교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환은 모든 세대의 일이므로, 배움의 자리도 삶의 모든 자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 유아교육 — 물건을 아껴 쓰고 바꿔 쓰는 놀이, 텃밭과 계절의 경험처럼, 말보다 몸으로 배우는 시기의 습관이 평생의 바탕이 됩니다.
- 학교교육 — 교과 수업과 학교 생활 전체가 ESD의 무대입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봅니다.
- 직업교육 — 에너지 효율 시공, 자원 순환 설계처럼 전환을 실제로 수행할 손과 기술을 기릅니다. 전환은 결국 일터에서 완성됩니다.
- 평생교육 — 학교를 떠난 세대도 새 지식과 논쟁을 따라잡을 수 있어야, 세대 간의 대화가 끊기지 않습니다.
- 지역사회 — 마을 축제의 자원 순환 부스, 도서관의 기후 강좌, 주민 참여 예산처럼 생활의 현장이 곧 교실이 됩니다.
이것은 보이텔스바흐 합의 편에서 소개한 열 번째 테제 —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를 필요로 한다” — 와 정확히 겹칩니다. 수십 년짜리 전환은 지금 학교에 다니는 세대만의 숙제가 아니므로, 배움에도 나이 제한이 없어야 합니다.
한국의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한국의 학교에도 ESD는 이미 제도로 들어와 있습니다. 검증되는 것만 추리면 이렇습니다.
- 2022 개정 교육과정 — 교육부는 2021년 11월 발표한 총론 주요사항에서 생태전환교육을 교육 목표에 반영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특정 과목이 아닌 교육과정 전체의 과제로 삼은 것입니다.
- 선택과목 —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고등학교에는 교양 선택과목인 생태와 환경, 과학 계열 융합선택과목인 ‘기후변화와 환경생태’ 등이 마련되어, 원하는 학생이 더 깊이 배울 길을 열어 두었습니다.
- 학교환경교육 의무화 —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2023년 3월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환경교육이 의무화되었습니다. 교과 수업, 창의적 체험활동 등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해 실시됩니다.
- 유네스코학교 네트워크(ASPnet) — 1953년 창설된 이 국제 네트워크에 한국은 1961년부터 참여해 왔고, 전국 수백 개의 초·중·고등학교가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을 학교의 중점 활동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도의 틀은 갖춰졌지만, 그 틀을 살아 있는 배움으로 채우는 것은 각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생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학교 전체로 하는 접근은 무엇인가요
ESD의 국제 논의에서 가장 강조되는 방법론 중 하나가 전 기관 접근(Whole Institution Approach)입니다. 수업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학교라는 기관이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 — 급식, 에너지, 매점, 통학, 학칙 — 을 일치시키자는 것입니다. 교실에서는 자원 순환을 가르치면서 급식실에서는 잔반이 산을 이루고 있다면, 학생들이 정말로 배우는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그 모순 쪽입니다. 학교가 가르치는 대로 살아야 배움이 완성된다는 것이 이 접근의 한 문장 요약입니다.
우리 학교에서 시작해 볼 수 있는 일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 급식 잔반량을 조사해 게시하고, 잔반이 줄면 그만큼을 눈에 보이게 되돌려 받는 약속 만들기
- 학급별 에너지 지킴이를 정해 빈 교실의 소등·냉난방을 점검하기
- 학생회가 주도하는 교내 캠페인 — 일회용품, 중고 교복·교과서 물려주기, 통학 방법 바꿔 보기
- 이런 약속을 규칙으로 다듬어 보는 우리 반 법 만들기 — 정한 사람이 지키는 규칙이 오래간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는 수업
이렇게 배운 힘은 결국 제31조가 보장하는 교육받을 권리의 오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에는, 자신이 살아갈 미래를 이해하고 만들어 갈 힘을 기를 권리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다시 짚고 싶다면, 이 자료집의 처음인 지속가능성의 기초 (1권)으로 돌아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