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정환과 어린이 선언

'어린이'라는 말이 태어나고, 1923년 5월 1일 조선의 어른들이 어린이를 '해방'하자고 선언하기까지 — 그 선언을 오늘의 헌법으로 다시 읽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어떻게 태어났나요

지금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채기 어렵지만, ‘어린이’는 백 년 전만 해도 낯선 말이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애’, ‘애놈’, ‘애녀석’, ‘어린것’처럼 낮춰 부르는 말로 불렸고, 집안에서는 어른의 말에 따르고 어른의 일을 거드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아이를 어른과 같은 한 사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 널리 퍼지기 전이었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늙은이’, ‘젊은이’와 나란히 놓이는 말입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뜻의 ‘어린’에 사람을 뜻하는 ‘이’를 붙여, 어린 사람도 어른과 똑같이 하나의 ‘이’(사람)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이 말을 누가 처음 썼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전해집니다. 하나는 방정환(1899~1931)이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1920년 8월 잡지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 불 켜는 이」를 실으면서 이 말을 썼고, 그 뒤 소년운동과 잡지 『어린이』를 통해 온 나라에 퍼뜨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앞서 최남선이 1914년 10월 잡지 『청춘』 창간호에 실은 글 「어린이 꿈」에서 이미 이 말을 썼다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연구자들은 대체로 “방정환이 처음 만든 말은 아니지만, 아이를 존중하는 뜻을 담아 널리 퍼뜨린 사람은 방정환”이라고 설명합니다. 말을 처음 적은 사람과 그 말에 새 뜻을 불어넣어 세상에 뿌리내리게 한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말의 역사에서 자주 있는 일입니다.

1922년 — 첫 어린이날

방정환은 3·1운동 뒤 일본에서 공부하며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두었고, 1921년 5월 1일 천도교청년회 소년부를 넓혀 천도교소년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론을 세운 사람은 김기전, 앞장서 실천한 사람은 방정환이었다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천도교소년회는 창립 1주년이 되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날 회원들은 서울 거리에 늘어서서 “항상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라고 적힌 인쇄물을 나누어 주며 취지를 알렸습니다. 『동아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이 일을 “조선 소년 운동의 처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 왔는지 돌아보게 하고, 아이를 나라의 ‘10년 뒤’를 맡을 사람으로 보자는 호소였습니다. 이 첫 행사는 천도교소년회 한 단체가 연 것이었기에, 이듬해에는 종교와 단체를 넘어선 더 큰 자리가 준비됩니다.

1923년 5월 1일 — 어린이 선언

1923년 봄, 천도교소년회는 불교소년회·조선소년군 등 여러 소년 단체와 함께 조선소년운동협회를 만들었습니다(결성일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며 4월 17일로 적은 자료가 많습니다). 같은 해 3월 20일에는 방정환이 개벽사에서 우리나라 첫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고, 도쿄에서는 유학생들이 아동문예 연구 모임 색동회를 꾸렸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말과 잡지와 조직이 한꺼번에 갖추어진 해였습니다.

그리고 5월 1일,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로 서울 경운동 천도교당에서 첫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시내에 뿌린 선전지는 『개벽』 35호에 “약 20만 매”를 배포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고, 뒷날의 여러 자료는 12만 장이 뿌려졌다고 전합니다. 정확한 수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수십만 명이 살던 당시 서울에서 엄청난 양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선전지에는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 세 조항과, 어른과 어린이에게 각각 당부하는 글이 실렸습니다. 아래 원문은 『동아일보』 1923년 5월 1일자 3면에 실린 것을 한국방정환재단이 옮긴 판본을 기준으로 하고, 현대어 풀이를 나란히 붙였습니다.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

하나.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하나.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하나.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현대어로 풀면 이렇습니다.

  1. 어린이를 예로부터 내려온 윤리의 억누름(어른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질서)에서 풀어 주고, 완전한 한 사람으로서 인격적으로 대우하라.
  2. 어린이를 예로부터 내려온 경제의 억누름에서 풀어 주고, 만 14세 이하 어린이에게 돈을 주든 안 주든 노동을 시키는 일을 없애라.
  3. 어린이가 조용히 배우고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집과 사회에 여러 시설을 마련하라.

세 조항의 뼈대는 ‘해방’입니다. 어린이를 보살펴 주자는 말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윤리, 경제) 이름을 붙이고 거기서 풀어 주자고 했다는 점이 이 선언의 특징입니다.

어른에게 드리는 글

  1.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2. 어린이를 늘 가까이 하사 자주 이야기를 하여 주시오.
  3.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4.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시오.
  5.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6.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가끔 가끔 시켜 주시오.
  7.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8.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 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9.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낯선 말 몇 가지만 풀면 됩니다. ‘쳐다보다’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다는 뜻이니, 1항은 “어린이를 얕보지 말고 우러러 대하라”는 말입니다. ‘경어’는 높임말, ‘원족’은 소풍, ‘책망’은 꾸짖음입니다. 마지막 9항은 “우주라는 큰 몸의 가장 예민한 신경 끝은 어린이에게 있다”, 곧 세상의 새로움과 앞날은 어린이에게서 나온다는 비유입니다.

어린 동무들에게

  1.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2. 어른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3. 뒷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같은 것을 그리지 말기로 합시다.
  4. 길가에서 떼를 지어 놀거나 유리 같은 것을 버리지 말기로 합시다.
  5.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6.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7. 입은 꼭 다물고 몸은 바르게 가지기로 합시다.

어린이에게 하는 말이 “~합시다”로 끝난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합니다. 시키는 말이 아니라 함께 약속하는 말투입니다. 2항의 ‘존대’는 어린이들끼리도 서로 높여 대하자는 뜻으로, 어른에게 드리는 글 3항(어린이에게 높임말을 쓰라)과 짝을 이룹니다.

덧붙여 두면, 같은 날 나온 『개벽』 35호에 실린 선전문은 어른에게 드리는 글이 8개 항목이고 낱말도 조금 다릅니다(예: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가끔가끔 시키시어 자연을 친애하는 버릇을 지어 주시오”). 잡지 인쇄가 먼저 끝나고 선전지가 마지막에 손질된 것으로 보이며, 어느 쪽이든 큰 뜻은 같습니다.

세계 최초일까요

1923년의 이 선언은 흔히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으로 불립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그렇게 평가했고, 한국방정환재단도 이 표현을 씁니다. 근거는 분명합니다. 국제사회의 첫 어린이 권리 문서로 꼽히는 제네바 어린이 권리 선언을 국제연맹 총회가 채택한 날은 1924년 9월 26일이니, 조선의 선언이 1년 넘게 앞섭니다. 내용 면에서도 제네바 선언이 굶주린 아이를 먹이고 병든 아이를 돌보는 보호에 무게를 두었다면, 조선의 선언은 어린이를 억누르는 질서에서 해방하고 인격적으로 예우하라고 했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신중한 평가도 있습니다. 제네바 선언의 초안은 영국의 에글렌타인 젭이 썼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뒤 굶주리는 유럽 아이들을 돕기 위해 1919년 동생 도로시 벅스턴과 함께 ‘세이브 더 칠드런’을 세운 사람입니다. 젭이 다섯 항목으로 정리한 선언문은 1924년 국제연맹이 채택하기 전, 1923년 2월 23일 국제 세이브 더 칠드런 연합 총회에서 이미 채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서가 세상에 나온 시점만 따지면 젭의 선언이 조선의 선언보다 두 달가량 앞서는 셈입니다. 제네바 선언의 다섯 항목은 대략 이렇습니다. 어린이에게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단을 줄 것, 굶주린 아이는 먹이고 병든 아이는 돌보고 고아는 거두어 줄 것, 어려운 때에 어린이를 가장 먼저 구할 것,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길러 주고 모든 착취에서 보호할 것, 자기 재능을 이웃을 위해 쓰도록 기를 것.

그래서 어떤 표현이 맞을까요. ‘세계 최초’라고 말하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밝혀야 합니다. 국제기구가 채택한 문서만 따지면 조선의 선언이 앞서고, 민간 단체가 발표한 문서까지 넣으면 젭의 선언이 조금 앞섭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이른 어린이 권리 선언 가운데 하나”라는 표현이 더 안전하고, 어느 쪽이 먼저냐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몰랐던 두 곳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생각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전쟁과 식민 지배라는 서로 다른 고통 속에서, 유럽과 조선의 어른들이 동시에 “어린이에게 먼저”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국제적 흐름은 2권 세계로 퍼진 어린이의 권리에서 이어집니다.

그 뒤의 어린이날

  • 1927~1928년 — 날짜가 바뀌다.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메이데이)과 겹쳐 일제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1927년에 5월 첫째 일요일로 옮기기로 하고 1928년부터 그렇게 지냈습니다.
  • 1937년 무렵 — 중단.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7년 일제가 소년 단체 해산을 명령하면서 어린이날 행사는 끊겼습니다. 마지막 행사가 열린 해를 1937년, 1938년, 1939년으로 달리 적은 자료가 있어 정확한 연도는 조심스럽습니다. 방정환은 이미 1931년 7월,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 1946년 — 5월 5일로 부활. 광복 이듬해 어린이날이 되살아났습니다. 이 해 5월 첫째 일요일이 5월 5일이었고, 해마다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그 뒤로 5월 5일에 고정되었습니다.
  • 1957년 —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제35회 어린이날인 5월 5일, 전문과 9개 항으로 된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발표되었습니다. 어린이를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위험한 때에 맨 먼저 구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1923년 선언과 1924년 제네바 선언의 정신을 함께 이었습니다. 이 헌장은 1988년 5월 5일 11개 항으로 개정되었습니다.
  • 1961년 — 법에 적히다. 「아동복리법」(지금의 아동복지법)이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못 박았고, 1973년 기념일, 1975년부터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 2016년 — 아동권리헌장. 제94회 어린이날을 맞아 보건복지부가 전문과 9개 조로 된 「아동권리헌장」을 발표했습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언어로 어린이의 권리와 어른의 책임을 다시 적은 이 문서는 4권 우리나라의 어린이 권리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방정환의 선언을 오늘의 헌법으로 읽으면

1923년 선언은 법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는 어린이를 지켜 줄 헌법이 없었고, 선언은 어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종이 한 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대한민국 헌법을 펼치면, 그 종이 한 장이 요구했던 것들이 조문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1923년 선언요구한 것오늘의 헌법
기초 조건 1 — 윤리적 압박에서 해방, 완전한 인격적 예우어린이도 한 사람으로 존중받을 것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어른에게 드리는 글 1·3 — 내려다보지 말고, 높임말을 쓸 것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낮춰 대하지 말 것제11조 평등, 차별 금지
기초 조건 2 — 경제적 압박에서 해방, 만 14세 이하 노동 폐지어린이가 일하러 내몰리지 않을 것제32조 제5항 연소자 근로의 특별한 보호
기초 조건 3 — 고요히 배울 시설배울 권리제31조 교육을 받을 권리, 의무교육 무상
기초 조건 3 — 즐거이 놀 시설, 어른에게 드리는 글 8 — 놀이터와 기관놀고 쉴 권리, 국가의 뒷받침제34조 제4항 청소년 복지 향상 정책

1923년의 “만 14세 이하 노동 폐지”가 오늘 근로기준법의 최저 취업 연령(15세)과 거의 같다는 점,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시설”이 의무교육과 놀 권리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면, 백 년 전 선언은 놀랄 만큼 앞을 내다본 문서였습니다. 다만 헌법에 적혔다고 해서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에게 드리는 글의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는 지금도 여전히 어른들에게 남아 있는 숙제이고, 그 뒷이야기는 3권 유엔 아동권리협약과 4권으로 이어집니다.

생각해 볼 질문

  1. ‘어린이’라는 말이 없던 때와 있는 때, 어른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정말 달라졌을까요? 말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고 할 수 있을까요?
  2. 1923년 선언은 “어린이를 해방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해방’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은 헌법의 어느 조항과 이어질까요?
  3. “세계 최초”라는 말을 쓰려면 어떤 기준을 정해야 할까요? 같은 사실을 두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과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은 각각 어떤 장점과 위험이 있을까요?
  4. 「어른에게 드리는 글」 아홉 가지 가운데 지금 우리 집이나 학교에서 가장 잘 지켜지는 것과 가장 안 지켜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미확인·남은 검토 사항

  • 조선소년운동협회 결성일 — 위키백과 등은 1923년 4월 17일로 적고, 국사편찬위원회 해설은 1922년 4월로 적고 있습니다. 『개벽』 35호가 1923년 5월 시점에 “이번 조직된 소년운동협회”라고 쓴 점으로 보아 1923년 4월이 더 맞아 보이지만, 정확한 날짜는 1차 사료로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 1923년 선전지 배포 부수 — 『개벽』 35호는 “약 20만 매” 배포 계획을, 뒷날의 여러 자료는 “12만 장”을 적고 있어 본문에는 둘 다 소개했습니다.
  • 어린이날 중단 연도 — 1937년(소년단체 해산 명령), 1938년, 1939년으로 자료가 갈립니다.
  • 1923년 어른에게 드리는 글의 항목 수 — 『동아일보』 1923.5.1 3면 전재본(방정환재단)은 9개, 『개벽』 35호는 8개 항목입니다. 본문은 9개 항목 판본을 기준으로 하고 차이를 밝혔습니다. 『동아일보』 지면 원본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1923년 3월 색동회의 정확한 결성일(16일 발기, 30일 창립 등 여러 표기)은 본문에서 날짜를 적지 않았습니다.

🔗 관련 기본권

제10조 ·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제11조 · 평등권제31조 · 교육을 받을 권리제32조 · 근로의 권리제34조 ·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