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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퍼진 어린이의 권리

1924년 다섯 줄짜리 제네바 선언에서 1989년 54개 조문의 유엔 아동권리협약까지 — 어린이가 '보호받는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가 되기까지 세계가 걸어온 길.

어린이는 어떻게 ‘권리의 주체’가 되었나요

오늘 우리는 어린이에게 권리가 있다는 말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100여 년 전만 해도 어린이는 어른의 보살핌을 받는 대상이었을 뿐, 스스로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산업혁명기의 공장과 탄광에서는 어린이가 값싼 노동력으로 하루 열 시간 넘게 일했고, 그것을 막을 국제적인 약속은 없었습니다.

생각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연합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해상 봉쇄를 이어갔고, 그 나라들의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죽어 갔습니다. 영국의 사회운동가 에글렌타인 젭(1876~1928)은 굶주린 아기의 사진을 실은 전단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나눠 주다가 체포되어 벌금 5파운드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기소한 검사가 감동하여 벌금을 대신 내겠다고 나섰고, 이 돈이 새 단체의 첫 기부금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919년 5월, 젭은 동생 도로시 벅스턴과 함께 런던에서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Fund)을 세웠습니다.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나라의 어린이도 똑같이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습니다.

1924년 제네바 선언은 무엇을 약속했나요

젭은 구호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를 세계가 함께 약속하는 문서가 필요했습니다. 그녀가 쓴 짧은 초안은 1923년 2월 국제 세이브더칠드런 연합 총회에서 채택되었고, 이듬해인 1924년 9월 26일 국제연맹 총회가 이를 받아들여 제네바 아동권리선언이 되었습니다. 어린이를 주제로 한 인류 최초의 국제 인권 문서입니다.

선언은 “인류는 어린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빚지고 있다”는 전문 뒤에 다섯 가지 약속을 담았습니다.

  1. 어린이는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자라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받아야 한다.
  2. 배고픈 어린이는 먹여야 하고, 아픈 어린이는 돌봐야 하며, 뒤처진 어린이는 도와야 하고, 잘못을 저지른 어린이는 바로잡아 주어야 하며, 고아와 떠도는 어린이는 거두어 보살펴야 한다.
  3. 어린이는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구호를 받아야 한다.
  4. 어린이는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길러져야 하며,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5. 어린이는 자신의 재능을 이웃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자라야 한다.

지금 눈으로 보면 이 선언의 주어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입니다. 어린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어른이 어린이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의 목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린이를 위한 최선이 인류 전체의 빚이라고 선언한 것은 큰 걸음이었습니다.

젭이 초안을 쓴 바로 그 1923년, 식민지 조선에서는 방정환과 소년운동협회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존중해 달라는 선언문을 배포했습니다. 서로 모른 채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해에 같은 생각이 싹튼 것입니다 — 1권 방정환과 어린이 선언.

1948년과 1959년, 유엔은 무엇을 더했나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연맹은 유엔으로 이어졌습니다. 1948년 12월 10일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30개 조항에 담았는데, 그중 제25조 제2항이 어린이를 따로 언급합니다. 어머니와 어린이는 특별한 보살핌과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모든 어린이는 부모의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똑같은 사회적 보호를 누린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헌법 제36조가 모성 보호와 국민 보건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정한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1959년 11월 20일, 유엔 총회는 회원국 78개국 전원의 찬성으로 아동권리선언(결의 1386호)을 채택했습니다. 1924년의 다섯 줄이 열 가지 원칙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1. 모든 어린이는 인종·피부색·성별·언어·종교·출신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이 선언의 권리를 누린다.
  2. 어린이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자유와 존엄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기회를 가진다. 이를 위한 법을 만들 때는 어린이의 최선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3.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다.
  4. 어린이는 사회보장의 혜택을 누리며, 충분한 영양·주거·놀이·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어머니도 출산 전후에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5. 몸이나 마음, 사회적 처지에 어려움이 있는 어린이는 그 상태에 맞는 특별한 치료·교육·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6. 어린이는 온전한 인격 발달을 위해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며, 가능한 한 부모의 보살핌 아래 자라야 한다. 가족이 없는 어린이는 사회와 국가가 특별히 돌보아야 한다.
  7. 어린이는 적어도 초등 단계에서 무상·의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놀이와 여가를 충분히 누릴 기회를 가져야 한다.
  8. 어린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보호와 구호를 받아야 한다.
  9. 어린이는 모든 형태의 방임·잔혹 행위·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적정 연령 전에는 일터에 나가서는 안 된다.
  10. 어린이는 차별을 부추기는 관행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이해와 관용, 민족 간 우정과 평화의 정신 속에서 자라야 한다.

두 번째 원칙에 처음 등장한 어린이의 최선의 이익이라는 말은 30년 뒤 아동권리협약의 심장이 됩니다. 다만 1959년의 선언도 여전히 ‘선언’이었습니다. 각국이 지키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어겨도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폴란드는 왜 협약을 제안했나요

선언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바꾸자고 처음 제안한 나라는 폴란드였습니다. 1978년 2월 7일, 폴란드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협약 초안을 제출하며 이듬해 1979년 ‘세계 아동의 해’에 맞추어 채택하자고 했습니다.

폴란드가 앞장선 데에는 한 사람의 유산이 있었습니다. 소아과 의사이자 교육자, 작가였던 야누시 코르착(본명 헨리크 골트슈미트, 1878/79~1942)입니다. 그는 1912년부터 바르샤바에서 고아원 ‘돔 시에로트’를 운영했고, 1929년 『어린이가 존중받을 권리』에서 어린이는 ‘앞으로 사람이 될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미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1942년 8월 5일, 나치는 바르샤바 게토의 고아원 아이들 약 200명을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보냈습니다. 코르착에게는 여러 차례 탈출 제안이 있었지만 그는 거절했고, 동료 스테파니아 빌친스카와 함께 행렬 맨 앞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떠났습니다. 오늘 트레블링카 추모지의 1만 7천여 개 돌 가운데 개인의 이름이 새겨진 것은 단 하나, “야누시 코르착과 아이들”입니다.

폴란드의 바람과 달리 협약은 1979년에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유엔 인권위원회에 실무그룹이 꾸려져 해마다 제네바에서 모였지만, 냉전 속의 동서 진영과 종교·문화가 다른 나라들이 어떤 권리를 앞세울지를 두고 부딪혔고, 모든 조문을 합의로 정하는 방식 때문에 협상은 10년이 걸렸습니다.

1989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무엇이 다른가요

1989년 11월 20일, 1959년 선언이 채택된 지 꼭 30년 되는 날 유엔 총회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결의 44/25)을 채택했습니다. 20개국이 비준하자 협약은 1990년 9월 2일 발효했고, 이후 놀라운 속도로 퍼져 나가 현재 당사국은 196개국입니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 하나뿐이며, 미국은 서명만 하고 아직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비준한 인권조약입니다.

협약은 전문과 54개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을 ‘아동’으로 정의합니다. 이전의 선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조약이므로 비준한 나라에 법적 의무가 생깁니다. 둘째, 어린이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세웁니다. 특히 제12조가 정한 ‘자기 일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존중받을 권리’는 1924년과 1959년 선언에는 없던 내용입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비차별(제2조), 아동 최선의 이익(제3조), 생명·생존·발달(제6조), 아동 의견 존중(제12조)을 협약 전체를 관통하는 4대 일반원칙으로 꼽습니다. 조문 하나하나는 3권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 살펴봅니다.

협약은 그 뒤 세 개의 선택의정서로 보강되었습니다.

  • 2000년 5월 25일 채택 — 아동의 무력분쟁 참여에 관한 의정서(18세 미만의 징집과 직접 전투 참여 금지)와 아동 매매·성매매·성착취물에 관한 의정서.
  • 2011년 12월 19일 채택, 2014년 4월 14일 발효 — 개인청원 절차 의정서. 자기 나라에서 구제를 받지 못한 어린이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직접 진정을 낼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1954년 유엔 총회가 각국에 ‘세계 어린이의 날’을 두자고 권고한 이래, 오늘날 11월 20일은 1959년 선언과 1989년 협약을 함께 기념하는 세계 어린이의 날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참여했나요

대한민국은 1990년 9월 25일 협약에 서명하고, 유엔에 가입한 지 두 달 뒤인 1991년 11월 20일 비준서를 기탁했습니다. 협약은 30일 뒤인 1991년 12월 20일 조약 제1072호로 국내에 발효했습니다.

다만 비준 당시 국내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 조항을 유보했습니다. 유보란 조약의 특정 조항은 우리나라에 적용하지 않겠다고 미리 밝히는 것입니다.

  • 제9조 제3항(부모와 떨어져 사는 어린이가 부모를 만날 권리) — 2007년 12월 민법의 면접교섭권 조항을 고쳐 자녀에게도 이 권리를 인정한 뒤, 2008년 10월 16일 유보를 철회했습니다.
  • 제21조 (a)(입양은 권한 있는 기관의 허가로만) — 2013년 7월부터 미성년자 입양에 가정법원 허가를 받도록 민법을 고친 뒤, 2017년 8월 11일 유보를 철회했습니다.
  • 제40조 제2항 (b)(v)(형사 절차에서 어린이의 상소권) — 비상계엄 아래 군사법원의 단심제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유보했으며, 이 조항은 지금도 유보 상태입니다.

무력분쟁·아동매매에 관한 두 선택의정서는 2004년 9월 24일 비준했지만, 개인청원 의정서는 2024년 기준 아직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협약 당사국은 정기적으로 이행 상황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하고 심의를 받습니다. 우리나라는 1996년, 2003년, 2011년에 이어 2019년 9월 18~19일 제네바에서 제5·6차 통합 보고서를 심의받았고, 위원회는 그해 10월 최종견해를 내놓았습니다. 주요 권고는 이렇습니다.

  • 가정을 포함한 모든 환경에서 모든 체벌을 법으로 명시적으로 금지할 것. 이에 따라 2021년 1월 민법 제915조의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62번째로 체벌을 금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의 출생이 등록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도입할 것.
  • 형사미성년자 연령(14세)을 낮추지 말고 유지할 것, 경쟁적인 교육 환경을 완화하고 어린이 자살의 근본 원인을 없애는 노력을 강화할 것, 아동 관련 예산을 늘릴 것.

위원회는 그 밖에도 제40조 유보의 철회와 개인청원 의정서 비준을 검토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의 권리를 법과 제도로 어떻게 담아 왔는지는 4권 우리나라의 어린이 권리에서 이어집니다.

세계의 어린이는 지금 어떤가요

협약이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약속이 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숫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합니다.

  • 아동노동 —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니세프의 2024년 추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약 1억 3,800만 명의 어린이가 아동노동을 하고 있고, 그중 약 5,400만 명은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일을 합니다. 2000년의 2억 4,600만 명에 비하면 거의 절반으로 줄었지만, 2025년까지 아동노동을 없애겠다던 세계의 목표는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우리 헌법 제32조가 연소자의 근로를 특별히 보호하도록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학교 밖 어린이 — 유네스코의 2025년 발표에 따르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약 2억 7,200만 명(초등 7,800만, 중등 6,400만, 고등 1억 3,000만)입니다. 1959년 선언의 일곱 번째 원칙과 우리 헌법 제31조가 약속한 교육받을 권리가 아직 모두에게 닿지 않은 것입니다.
  • 출생등록 — 유니세프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5세 미만 어린이의 등록률은 77%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약 1억 5,000만 명이 출생등록이 되지 않아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살고 있습니다. 1959년 선언의 세 번째 원칙,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의 문제입니다.

1924년의 다섯 줄에서 시작한 약속은 이제 196개국의 법적 의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리는 문서에 적혔다고 저절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모든 어린이가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제10조와 어떤 어린이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제11조의 원칙을 매일의 현실로 바꾸는 일은 여전히 우리 세대의 과제입니다.

생각해 볼 질문

  1. 1924년 선언은 “어린이는 ~을 받아야 한다”고 쓰고, 1989년 협약은 “어린이는 ~할 권리를 가진다”고 씁니다. 이 두 표현은 무엇이 다를까요? 여러분이 겪는 학교나 가정의 규칙을 두 방식으로 각각 바꿔 써 보세요.
  2. 에글렌타인 젭은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나라의 어린이를 돕자고 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그때 그렇게 위험하게 여겨졌을까요?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이 있을까요?
  3. 미국은 협약에 서명했지만 비준하지 않았고, 우리나라는 비준하면서 세 조항을 유보했습니다. 어떤 나라가 어떤 조항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지를 보면 그 나라의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4. 세계에는 지금도 1억 3,800만 명의 어린이가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 가운데 어린이의 손을 거쳐 온 것은 없을까요? 그것을 알게 되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미확인·남은 검토 사항

  • 1924년 선언과 1959년 선언의 본문은 영어 원문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 옮긴 것입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등의 공식 국문 번역본을 구하면 표현을 대조해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 개인청원 선택의정서에 대한 우리나라의 비준 여부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2024년 기준 안내에 따랐습니다. 이후 비준이 이루어졌다면 갱신해야 합니다.
  • 코르착 고아원 아이들의 수는 자료에 따라 192명에서 200여 명까지 차이가 있어 ‘약 200명’으로 적었습니다.

🔗 관련 기본권

제10조 ·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제11조 · 평등권제31조 · 교육을 받을 권리제32조 · 근로의 권리제36조 · 혼인·가족생활과 보건